그런지 이후의 얼터너티브 록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Smashing Pumpkins의 걸작,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

1990년대 록계는 얼터너티브록의 시대였으며, 또한 다양성의 시대였다. 1990년대초는 80년대 를 대표했던 Metallica, Guns N' Roses, U2, Def Leppard, Megadeth, Bon Jovi, R.E.M. 등의 거물급 록밴드들과 Soundgarden, Alice In Chains, Nirvana, Pearl Jam 등 이미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며 실력을 닦아온 시애틀의 젊은 거물급 밴드들이 나름대로의 성공을 거두고 잠시 서로 공존했으나, 1992년 이후 불과 1-2년 사이에 동시에 록씬은 확실한 세대교체를 이루고 있었다.
그 와중에 시애틀에서는 한참 떨어진, 시카고 출신의 5인조 록밴드 스매싱 펌킨스 역시 80년대말부터 활동하고, 1991년 캐롤라인 레코드에서 정규 데뷔 앨범 Gish를 발표하며 록계에 입문했다. 즉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으나 음악팬들 사이에서는 꾸준히 회자되며 비범함을 알렸다. 또한 록팬들 사이에서는 I Am One, Siva, Rhinoceros 같은 곡들은 꽤 많은 사랑을 받았다. 데뷔 앨범에는 헤비록부터 사이키델릭, 슈가팝, 얼터너티브록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장르가 절묘하게 공존하고 있었음에도 산만함이 아닌 에너지와 감성이 살아있었다. 같은해 Nirvana의 Nevermind를 제작했던 부치빅이라는 대단한 프로듀서도 참여했지만, 신인 밴드의 앨범으로서는 상당한 수준이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2년만에 발표된 2집 Siamese Dream은 리더인 빌리 코건의 천재성이 드러난 작품으로 좀더 완성도 높은 사운드에 당시 얼터너티브록의 코드를 적절히 섞으며 Nirvana, Pearl Jam, Alice In Chains 등의 정상급 밴드들과의 정면 대결에서 지지 않고, 여러 히트곡을 쏟아내며 스매시 히트를 기록, 당대를 대표하는 밴드로 급무상했다.
그러다 2년만에 정규 3집 앨범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가 발표되었다. 본 앨범은 (적어도 얼터너티브 록씬에서는) 당시나 이후로도 보기 어려운 보기 힘든 2장짜리 풀렝스 정규 앨범으로 제작되었다. 2장의 CD에는 무려 28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컨셉 형식으로 제작되어 있다. Dawn to Dusk와 Twilight to Starlight라는 타이틀이 각각 붙어있는데, 수록곡들이 소프트한 어쿠스틱과 슈가팝, 슈게이징, 사이키델리부터 얼터너티브, 하드록, 인더스트리얼적인 분위기의 실험적인 곡까지 그야말로 놀라울 정도의 넓은 스펙트럼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관적인 흐름을 느끼게 해준다. 싱글 커트된 Bullet With Butterfly Wings와 Zero는 다소 강렬하지만 세련되게 다듬어진 얼터너티브록이며, 반면 Tonight, Tonight, Thirty-Three은 그런지록이나 펑크록 밴드들과는 한참이나 떨어진 아름다운 분위기의 곡이다. 또한 앨범의 최고 히트곡 중 하나인 1979는 감성을 자극하는 깔끔한 모던록 사운드와 빌리 코건의 추억을 담은 가사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 시대를 초월한 명곡이다. 한편 Take Me Down과 Farewell And Goodnight 등 각 CD의 마지막 트랙으로 위치한 2곡은 기타리스트 제임스 이하가 작곡한 것이며, 그 2곡 이외 앨범의 모든 곡들은 빌리 코건이 작곡했다. 또한 빌리 코건은 디페쉬 모드, U2, NIN 등과 함께 작업한 바있는 명프로듀서 Alan Moulder, Flood 등과 함께 앨범의 프로듀싱까지 담당하며 넘치는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당시 그의 창작력은 놀라운 정도로, 앨범의 흐름상 누락된 많은 곡들이 5장의 EP (5장의 미니앨범으로 정규 앨범 2장의 분량에 맞먹는 박스셋으로 발표)으로 발매되었다.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는 90년대 수많은 명반들 가운데 가장 주목할만한 작품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 Producer : Alan Moulder, Billy Corgan, Fl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