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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Rock, Progressive

Essential Recordings
  • Nick Drake의 Pink Moon [Remaster][Digipak] 앨범 커버 Pink Moon [Remaster][Digipak]
    Nick Drake
    Island (UK) | 19,900원
    사후에야 인정받은 비운의 천재 싱어송라이터 Nick Drake의 마지막 앨범 Pink Moon (1972)

    단 3장의 정규 앨범을 남기고 26살의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닉 드레이크는 그야말로 "비운의 천재 아티스트"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인물이다. 아버지의 직장으로 인해1948년 버마 랭군에서 태어나 3살이었던 1951년 영국으로 돌아와 유년기를 보낸 그는, 엔지니어였던 아버지와 공무원이었던 어머니는 양쪽 모두 음악을 좋아해 작곡을 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닉 드레이크는 부모님들의 격려로 피아노 연주를 배우고 작곡을 시작하며 집에 있는 릴 테이프 녹음기에 레코딩도 했는데, 실제로 사후 한참 뒤였지만 과거에 녹음된 어머니의 곡이 사후에 공개되기도 했다. 이때 발견된 음원들에서는 특히나 어머니의 음악적인 재능과 감성, 심지어 톤과 목소리 창법 등은 훗날 닉 드레이크 특유의 그것과 상당한 공통점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보아 어머니는 그에게 그 누구보다도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청소년기 그는 운동에도 소질을 보이며 학교에서 육상과 럭비 등을 하고 학교 대표팀에 뽑혀 주장까지 맡는 등 나름 주목을 받기도 했다. 스포츠에서 재능을 보유하며 꽤 활발히 활동을 했음에도 10대 시절 학교에서 그는 튀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그다지 사교적이지 않은 조용한 학생으로 기억되었다. 한편 그는 피아노 외에 다른 악기들도 배우며 10대 중반었던 1964-65년 학교 친구들과 "Perfumed Gardeners"라는 4인조 밴드를 처음으로 결성해 록, R&B, 재즈, 등의 음악을 커버해 연주했다. 이후 학업에 대한 흥미가 줄어들던 닉 드레이크는 1965년 생전 처음으로 기타를 구입해 연주를 시작했는데, 곧 여러가지 실험적인 연주 방식을 공부하며 오픈 튜닝, 핑거 피킹 등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갔다.
    대학생이 된 그는 기타를 본격적으로 공부하며 프랑스에서 공부를 하고 이후 해외로 여행을 다니며 곡을 쓰기 시작하는데, 1960년대 중후반 당시 미국, 유럽할 것 없이 세계적으로 약물의 시대였던 당시 그 역시 처음으로 마리화나, LSD 등의 약물, 환각제 등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다. 1967년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지만 본인의 재능에 비해 학업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대학에서 학업은 물론 스포츠에 대한 관심 또한 사라진 그는 다시 음악에 집중하고, 이 시기 다시 약물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1968년 1월, 스무살이 된 닉 드레이크는 자신의 음악에 큰 도움을 준 로버트 커비(Robert Kirby)를 처음 만나게 된다. 당시 드레이크와 동갑내기 학생이었던 그는 몇년뒤 닉의 첫 앨범 2장의 레코딩에 참여해 현악과 목관 악기의 편곡에 있어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당시 그는 전세계적으로 붐이 일던 포크 음악에 대한 관심이 커졌으며 밥 딜런, 도노반, 밴 모리슨, 조쉬 화이트 등 당시 떠오른 전설적인 포크 뮤지션들로부터 음악적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로컬 클럽이나 커피점에서 연주 활동을 시작했던 그는 당시 공연 중 포크록 뮤지션이자 베이시스트였던 애슈리 허칭스(Ashley Hutchings)의 눈에 띄며 그의 소개로 메이저 음반사인 Island Records와 계약한 산하 회사격인 Witchseason Productions를 운영하던 조 보이드(Joe Boyd)를 만나게 된다. 조 보이드는 당시 영국 포크씬에서는 꽤 인정을 받던 인물이었는데 무명의 아마추어였던 닉 드레이크가 과거에 레코딩했던 데모 음악을 듣고 단번에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그는 닉의 음악적 멘토이자 지원자를 자처하며 정식으로 앨범 제작을 권유하고, 음반 계약은 물론 직접 제작, 매니지먼트까지 담당하는 등 음악 커리어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첫 데뷔 앨범 Five Leaves Left (1969)가 발매되었다. 조 보이드가 직접 프로듀싱한 앨범은 그에 따르면 당시 신인이었던 전설적인 캐나다의 포크 싱어송라이터 레너드 코헨의 1967년 데뷔 앨범이자 포크 명반 Songs of Leonard Cohen이 보여줬던 최대한 인위적인 과장 등이 없이 녹음된 제작 방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한편으로 그는 앨범 레코딩을 위해 자신이 육성한 Fairport Convention의 멤버들을 세션으로 불러왔다. 이후 음악적 스타일, 방향성의 견해 차이 등 여러가지 이유로 레코딩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1969년 7월 데뷔 앨범 Five Leaves Left가 발매되었다. 하지만 데뷔 앨범에 대해서는 당시 비교적 호의적인 평가가 있었지만 다소 밋밋하다는 얘기도 있었으며, 앨범 프로모션에 있어서도 존 필 등 일부 전문적인 음악 채널을 제외하고 라디오 등의 방송 매체를 통한 홍보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등의 문제로 인해 결국 상업적으로는 실패하였다.
    이후 2집을 준비하며 그는 Witchseason Productions의 오프닝 등으로 라이브 공연을 하는데 당시 신인이었고, 스타일적으로도 유행하던 메인스트림 폭크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던 그의 음악에 낯설음을 느끼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혹은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대다수 관객들의 무관심에 가까운 반응에 실망한 그는 이후 라이브 활동을 주저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신인이었던 당시 몇차례 공연을 했지만 관객들의 반응이나 관객수 등 모든 면에서 흥행은 매번 실패에 가까웠다고 한다. 어쨌든 1971년 3월, 2집 Bryter Layter가 발매되었다. 존 보이드가 다시 프로듀서로 참여한 2집은 목가적인 분위기의 데뷔 앨범에 비해 좀더 활기가 있고 재즈적인 분위기의 곡들이 늘어나며 대중적인 요소가 가미되었다는 평을 받았다. 2집에는 1집에 참여했던 Fairport Convention의 멤버들과 친구 로버트 커비 뿐 아니라, 웨일즈 출생으로 전설적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존 케일이 세션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2집도 결국 상업적으로 실패하고, 당시 평론가들에게도 호평과 비판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결국 존 보이드는 Island Records에 회사를 팔고 LA로 가서 영화 음악을 시작했으며, 연이은 앨범의 상업적 실패와 함께 음악적 멘토까지 잃은 20대 초반의 닉 드레이크의 우울증은 더욱 심해져갔다. 당시 소속사는 그에게 프로모션을 위해 인터뷰나 공연, 방송 등의 활동을 설득했으나 그는 거절했고 결과는 더욱 좋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심리적으로 연이은 실패로 인한 우울감에 빠져 위축된 그는 점점 가족과 친구들로부터도 스스로 고립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소속사의 예상과 달리 세번째 앨범인 본 작품 Pink Moon (1972)을 준비했으며 이번에는 전작들과 완전히 다르게 John Wood만이 프로듀싱과 엔지니어링을 담당하고 닉 드레이크 혼자서 모든 레코딩 세션을 처리했다. 베이스, 드럼, 현악 등이 없이 오로지 그의 보컬과 어쿠스틱 기타, 피아노 만으로 구성된 그야말로 미니멀한 작품이었고, 모든 레코딩은 그 둘에 의해 단 이틀만에 이루어졌다. 수록곡들 또한 의도적으로 군더더기 없이 꼭 필요한 부문으로만 구성되어 전작들에 비해 짧막해졌다. 해 프로듀서 존 우드에 따르면 본 앨범은 전작들에 비해 가장 닉 드레이크의 본인이 원했던, 본인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한다. 하지만 1972년 2월에 발매된 본 3집에 대해 당시 평단의 반응은 이번에도 찬사와 비판이 엇갈렸고, 대중적으로는 오히려 전작에 비해 더 판매량이 좋지 않았다. 혹자는 마지막이 된 본 앨범은 우울증과 싸우던 당시 그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 있는 작품이기도 했지만, 그의 음악적 자산을 관리하는 Cally Callomon은 본 앨범에 대해 그는 우울증이 심할 때는 곡을 쓸 수 없었다면서 본 앨범의 곡들은 우울증에 빠져있지 않았었을 당시 쓰여진 것이며, 닉 드레이크는 본 앨범의 음악에 대해 매우 자랑스러워했다고 말했다. 연이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는 1973년 2월 존 우드에게 새로운 앨범의 작업 준비를 알렸다. 또한 그의 멘토였던 존 보이드가 돌아와 4집 앨범 레코딩에 참여할 계획이었다. 이듬해인 1974년 7월 첫 레코딩 세션이 시작되었지만 결국 그해 11월 25일 아침 닉 드레이크는 앨범을 완성하지 못한채 26살이란 젊은 나이에 항우울증제 과다 복용(추정)으로 자신의 집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음악들은 지금 들어봐도 도저히 60년대말 70년대 초의 곡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고 독창적인었다. 다만 안타깝게도 동시대의 대중들과 평론가들이 아직 그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는 시대를 초월해 그 자체로 뛰어났으며, 진정한 아티스트였다.

    * Original LP release : 1972
    * Produced by John Wood

    * AMG : 10/10
    * Pitchfork : 10/10
    * Rolling Stone : 10/10
    * Spin : 10/10
  • Rush의 R30 : 30th Anniversary Tour [2DVD][Digipak] 앨범 커버 R30 : 30th Anniversary Tour [2DVD][Digipak]
    Rush
    Anthem (US) | 37,500원
    프로그레시브록의 전설 Rush의 결성 30주년 기념 월드 투어와 각종 희귀 부가영상을 수록한 공식 더블 DVD 세트 R30

    캐나다가 자랑하는 최고의 록 밴드이자, 유럽 아트록과는 차별되는 새로운 경지를 만들어내며 드림 씨어터 등 현재의 프로그레시브 록/메틀 밴드들에게 직접적이고 절대적인 영향을 준 살아있는 신화이자 역사에 남을 트리오 중 하나인 RUSH의 결성 30주년 월드 투어를 기념해 발매한 DVD!

    :: 추가 DVD 정보
    - Region : 1
    - Video : NTSC, 16:9 (Anamorphic), 4:3
    - Audio : PCM Stereo & Dolby Digital 5.1 Surround
  • Lou Reed (The Velvet Underground)의 New York 앨범 커버 New York
    Lou Reed (The Velvet Underground)
    Sire (EU) | 19,900원
    1980년대를 화려하게 마무리하는 루 리드의 또다른 명반 New York (1989년 作)

    New York은 루 리드의 1989년작으로 그의 음악적 뿌리와도 같았던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사운드로 돌아오며 평단과 대중 모두로부터 환영을 받은 작품으로 그의 주요작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슬럼프를 극복하고 1980년대 들어 확실하게 재기에 성공한 루 리드에게 본 앨범은 80년대를 마무리하는 멋진 작품임에 틀림없다.
    사운드와 가사 양쪽 모두에서 높은 수준에 이른 작품으로 롤링 스톤은 본 앨범을 1980년대 최고의 앨범 중 19위에 올렸다. 싱글로 커트된 Dirty Blvd.는 당시 새롭게 만들어진 빌보드 모던 록 차트에서 4주간 1위를 차지했으며 앨범은 오랫만에 골드를 기록했다. 음악적으로, 대중적으로 그의 솔로 활동 기간 중 최고의 시간이었다

    * Producer : Lou Reed, Fred Maher

    * AMG : 9/10
    * Q : 10/10
    * Spin : 9/10
  • Styx의 The Best of Times : The Best of Styx [Remaster] 앨범 커버 The Best of Times : The Best of Styx [Remaster]
    Styx
    A&M (UK) | 19,900원
    1970년대 중반부터 10여년간 록씬을 대표했던 전설적인 아메리칸 록 밴드 스틱스(Styx)의 공식 베스트 앨범 (리마스터)

    스틱스의 뿌리는 1971년 공식 데뷔보다 약 10여년 먼저인 196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0대 초반이었던 데니스 드영과 척(베이스)/존(드럼) 파노조 형제와 이웃에 살고 있던 이들보다 2살 위로 14살로 노래와 아코디언 연주를 했던 데니스 드영이 만나 합주를 시작하고 곧 "The Tradewinds"라는 밴드를 결성한다. 이후 몇년 뒤에는 다소의 멤버 교체와 함께 당시 Trade Wind라는 동명의 밴드가 유명해지며 TW4 (There Were 4)라는 이름으로 밴드명을 변경했다. 1960년대말에는 파노조 형제가 시카고 주립 대학에 들어가며 데니스 드영과 재회하고, 1970년에는 제임스 영(James "J.Y." Young) 등을 영입하며 마침내 안정적인 4인조 라인업을 갖춘다. 그리고 1972년, 멤버들이 새로운 밴드 이름을 놓고 고민하다 마침내 세상에 알려진 밴드 "Styx"가 탄생한다.
    이들은 1972년 셀프 타이틀 앨범 Styx (1972)를 내놓고 Styx II (1973), The Serpent Is Rising (1973), Man of Miracles (1974) 등을 연이어 발표하며 왕성하게 활동을 시작한다. 하지만 아직은 시카고를 중심으로 전국적 인지도를 얻는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다 메이저 레이블 A&M과 계약 후 1975년 말에 발표한 5집 앨범 Equinox는 밴드 최초의 골드 레코드를 기록하며 의미있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천재 싱어송라이터인 타미 쇼(Tommy Shaw)가 밴드에 가입하며 밴드는 당대 최고의 밴드로 발돋움한다. 타미 쇼가 가입 후 발표한 첫 앨범 Crystal Ball (1976)을 필두로 The Grand Illusion (1977), Pieces of Eight (1978), Cornerstone (1979), Paradise Theatre (1981), Kilroy Was Here (1983) 까지 6장의 앨범이 연속으로 플래티넘 이상을 기록하며 밴드는 1984년 해체전(이후 10여년만인 1995년 재결성해 현재까지 활동 중에 있다)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스틱스는 데뷔 이래 하드록을 기반으로 프로그레시브, 전자 음악, 팝, 어쿠스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녹여내어 자신들만의 시그니쳐 사운드로 탄생시키며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뛰어난 예술적 완성도는 물론, 대부분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들와 달리 소수 마니아 층의 전유물로 남아있지 않고 대중적으로도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 Produced by Dennis DeYoung (tracks: 5, 14 to 16), Styx (tracks: 1 to 4, 6 to 13)
    * Remastered by Bob Ludwig
  • Pink Floyd의 Take It Back [CD Single](1994) 앨범 커버 Take It Back [CD Single](1994)
    Pink Floyd
    EMI (UK) | 24,500원
    현재까지 핑크 플로이드의 마지막 정규 앨범으로 남아있는 1994년작 The Division Bell의 첫번째 싱글로 선택된 곡 Take It Back. 기타와 리드 보컬을 담당하는 데이빗 길무어의 영향이 많이 느껴지는 곡으로 전체적으로 스페이스록적인 분위기에 그의 깔끔한 톤의 블루지한 기타 연주가 멋진 조화를 이루는 인상적인 곡이다. 본 싱글에는 희귀 싱글 버젼과 명곡 Astronomy Domine의 1994년 3월 라이브 버젼이 수록되어 있다.

    * Producer : Bob Ezrin and David Gilmour

    Deleted 1994 UK 3-track CD single including a live version of the classic Astronomy Domine recorded at the Joe Robbie Stadium on the 30th of March 1994, picture sleeve CDEM309. Maxi CD Single Slimcase. Made in Hol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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