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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From The Miramax Motion Picture Chicago
70년대 뮤지컬의 최고봉이 스크린으로 재탄생됐다. 1920년대 시카고로의 화려한 출정식, 시카고 Chicago 사운드트랙
미국인들에게 1920년대는 과연 어떤 시대일까- 1929년에 대공황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으니, 그 전까지 제1차 세계대전의 승리와 군수 산업의 확장, 또 자본주의의 토대 위에 꽤나 풍요롭고 호사스러운, 그리고 흥청거리던 세월이었을 터. 한마디로 소비와 쾌락을 추구하던 그 때는 전설적인 갱 알 카포네가 활약하던 시절, 그리고 재즈의 즉흥성이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던 시절이다. 바로 그 시절의 낭만과 추억을 통렬하게 담아낸 뮤지컬이 있으니, 다름 아닌 [시카고]. 1975년 브로드웨이의 46번가 극장에서 초연됐던 이 작품은, 1926년 연극으로 무대에 올려진 이래 이미 두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던 작품. 그것이 화려한 춤과 음악이 덧붙여져 뮤지컬의 금자탑으로 재탄생됐던 것이다.
뮤지컬의 주인공은 정부를 죽인 록시 하트와 남편과 여동생을 죽인 벨마 켈리. 이 두 여인이 결국 무죄 판정을 받기까지의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펼쳐냈다. 한마디로 1920년대 금주법 시대의 시카고를 배경으로 인기와 명성을 추구하는 두 여배우의 삶을 통해 부와 명성의 덧없음을 피력하고 있다. 당시 이 뮤지컬의 선전문구는 이랬다. '살인, 욕망, 부패, 폭력, 착취, 간통, 배신'. 그처럼 1920년대 당시 미국 사회에 대한 시니컬한 냉소가 담겨져 있는 작품. 바로 그 뮤지컬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이가 있으니, 천부적인 무용수이자 탁월한 안무가로 1970년대 뮤지컬을 혁신적으로 개혁했던 주인공인 밥 포세(Bob Fosse)이다. 우리에겐 [캬바레], [올 댓 재즈] 등으로 잘 알려진 그는, 파격적이고도 실험적인 안무와 형이상학적인 무대로 이 뮤지컬에 실험정신을 불어넣는다. 또한 [캬바레], [거미여인의 키스] 등에서 함께 했던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명콤비인 작사가 프레드 엡(Fred Ebb)과 작곡가 존 칸더(John Kander)의 음악이 이 뮤지컬에 또 다른 생명력을 수혈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특히 사회 비판의식을 가미해 단순히 웃고 즐기는 뮤지컬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그들 음악의 모토를 이 뮤지컬 구석구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어쨌든 이 뮤지컬은 1996년 브로드웨이의 무대에 다시 올려져 때아닌 [시카고]의 열풍을 불어왔고, 작년 롭 마샬 감독에 의해 스크린으로 재해석된다. 특히 그 영화에선 오리지널 무대에서 명연기를 펼친 치타 리베라의 뒤를 이어 캐서린 제타 존스가 벨마 켈리 역을 맡아 카리스마를 내뿜고 있고, 록시 하트 역엔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르네 젤위거가, 그리고 시카고 최고의 형사재판 변호사 빌리 플린 역엔 리차드 기어가 맡아 매혹적인 앙상블을 펼쳐낸다. 결국 최근 있었던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리차드 기어와 르네 젤위거는 각각 뮤지컬 코미디 부문 남, 녀 주연상을 수상하기도.
물론 이 영화의 음악 역시 오리지널이 되는 뮤지컬의 음악과 그리 다르지 않다. 작곡가 존 칸더와 작사가 프레드 엡이 솜씨를 뽐냈던 빼어난 뮤지컬 넘버가 스크린 위를 출렁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Cell Block Tango, We Both Reached For The Gun처럼 귀에 익은 뮤지컬 넘버를 다시 감상하는 느낌이 새롭다. 게다가 밴드 리더 테이 디그스(Taye Diggs)의 소개로 시작되는 뮤지컬 넘버의 아기자기함이 우리를 매혹시키는 것은 물론, 여배우 캐서린 제타 존스와 르네 젤위거의 빼어난 가창력에 새롭게 압도되는 순간. 그렇다면 뮤지컬과는 다른 이 영화음악만의 특기할만한 점은 없는 걸까- 브로드웨이 뮤지컬 [에비타]가 1996년 알란 파커 감독에 의해 영화화했을 때, 황금콤비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팀 라이스는 영화를 위해 뮤지컬에는 없었던 곡을 하나 써주었다. 그것이 바로 You Must Love Me. 극중 에바 페론 역을 맡은 마돈나가 부른 이 곡은 결국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했는데, 그 [에비타]처럼 이 영화 [시카고]에서도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영화음악들이 우리를 유혹한다.
우선 이 영화의 스코어는 작곡가 대니 엘프만(Danny Elfman)이 맡아 귀에 뮤지컬 넘버들 사이사이, 그 간극을 재기발랄하게 메꿔 주고 있다. 재즈 이디엄을 사용한 대니 엘프만의 음악에선 1920년대 담배 연기 가득한 클럽의 향이 드리워져 있다. 그런 그가 이 사운드트랙에서 선보인 스코어는 After Midnight과 록시 하트의 모음곡인 Roxie's Suite처럼 모두 두 곡. 그 뿐인가- 영화의 배경처럼 시카고 태생인 매력적인 싱어 송라이터 아나스타시아(Anastacia)는 Love Is A Crime을 부르고 있는데, 이 곡은 존 칸더와 프레드 엡의 작품이 아니라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것. 하지만 이 곡은 사운드트랙에만 담겨있을 뿐 영화 속에선 들을 수 없다. 그리고 쿡 카운티 교도소 여자 교도소에서 간수 '마마' 역으로 호연한 여성 래퍼 퀸 라티파(Queen Latifah)는 여성 힙합계의 가장 섹시한 래퍼로 손꼽히는 릴 킴(Lil' Kim)과 매혹적인 소울 디바 메이시 그레이(Macy Gray)와 함께 벨라 켈리를 비롯해 여성 죄수들인 리즈, 준, 애니 등과 함께 불렀던 Cell Block Tango를 재해석하고 있음도 특기할만한 점. 이렇듯 한때 '천국으로 가는 날개를 달아줄 작품'이라는 평을 들었던 뮤지컬 [시카고]가 스크린으로 새로운 운신의 폭을 넓히고 있다. 우리의 눈과 귀는 다시 풍요로워진다. (권영/ SONY MUS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