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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영국의 익스트림 계열 메탈 밴드 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크레이들 오브 필스는 국내에서도 벌써 3장의 앨범이 소개되었을 정도로 두터운 지지세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명작 [Vempire Or Dark Faerytales In Phallustein]이 소개된다. 밴드는 1991년, 대니(Dani, 보컬), 폴 라이언(Paul Ryan, 기타), 존 리처드(John Richard, 베이스), 벤 라이언(Ben Ryan, 키보드), 대런(Darren, 드럼), 이렇게 5인에 의해 결성되었다. 이들은 1992년에 [Invoking The Unclean]와 [Orgiastic Pleasures], 1993년에 [Total Fucking Darkness] 등 3장의 데모를 거쳐 1994년 데뷔 앨범 [The Principle Of Evil Made Flesh]로 그 악명을 알리기 시작하며 순조로운 진행을 보이지만 두 가지의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한 가지 문제는 멤버의 잦은 변동이었다. 멤버 변동은 이 앨범을 발매할 시기에 이르러서는 대니를 제외한 오리지널 멤버가 전원 교체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며 좀처럼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The Principle Of Evil Made Flesh]의 발표 후 만신창이가 된 밴드는 스튜어트(Stuart, 기타)와 다미언(Damien, 키보드), 그리고 세션 기타리스트로 야레드 디미터(Jared Demeter)를 기용하며 분위기 쇄신을 꾀한다. 결국 이 앨범을 발표할 즈음에는 이미 가입한 드러머 니콜라스(Nicholas)와 베이시스트 로빈(Robin)을 포함, 6인 체제로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게 된다. 또 한 가지의 문제는 레이블과의 문제였다. [The Principle Of Evil Made Flesh] 이후 잦은 트러블로 골머리를 앓던 밴드는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소속 레이블이었던 <캐코포너스(Cacophonous)> 레코드를 떠나게 된다(이후 메이저급 레이블인 <뮤직 포 네이션스(Music For Nations)> 사에 새로운 둥지를 틀며 안정을 되찾는다). 이 앨범은 이런 내외적인 어수선한 상태로부터 탈출하는 돌파구 역할을 한 셈이다.
이들의 음악은 흔히 ′광기의 미학′으로 표현된다. [The Principle Of Evil Made Flesh]에서부터 오리지낼리티를 확고히 다진 이들의 음악은 그 어떤 것보다 사악하다. 그리고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답다. 블랙 메탈이 갖고 있는 어둡고 악한 분위기를 공격적이며 스피디하게 펼쳐나간다. 또한 고딕 메탈이나 멜로딕 데스 메탈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미(美)′와는 조금 성격이 다른 요염하고 자극적인 ′성(性)의 미′를 거침없이 표현하고 있다. 섹시한 여성 흡혈귀의 이미지를 이용하는 것도 이런 의도의 하나일 것이다. 두 정규 앨범 [The Principle Of Evil Made Flesh]와 [Dusk Her And Embrace]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이 앨범은 비록 6곡에 36분이라는 미니 앨범이지만, 정규 앨범에 못지 않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3분이 채 안 되는 짧은 곡으로 쥐어짜는 듯한 대니의 보컬과 시계추처럼 정확한 니콜라스의 드러밍이 듣는 순간 소름끼치는 인트로 ′Ebony Dressed For Sunset′. 이 분위기는 그대로 다음 곡인 ′The Forest Whispers My Name′으로 이어진다. [The Principle Of Evil Made Flesh]에 수록된 곡을 재녹음한 곡으로 음산한 도입부에 이어 전속력으로 달려대며 절규하는 대니의 사악함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곡 ′The Forest Whispers My Name′. 특히 대니의 보컬은 미친 듯이 절규하는 것만이 아니라 때로는 속삭이듯 때로는 그라울링 보이스까지 다양하게 ′악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들의 최고의 곡이 아닌가 생각되는 곡은 ′Queen Of Winter, Throned′이다. 10분 27초의 시간동안 정교하게 짜여진 흐름 속을 세 종류의 보컬이 등장하며 끊임없이 협박과 유혹을 반복하는 드라마틱한 전개는 가히 최고라 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Dusk Her And Embrace]에서 먼저 선보여 키보드의 어둡고 중세적인 분위기가 기복이 심한 구성을 통해 빛을 발했던 곡인 ′Nocturnal Supremacy′의 거친 오리지널 버전으로 수록되어 있다. 좀 전까지 인정사정 없이 긁어대고 두드려대고 외쳐댔던 분위기를 일순 잠재워버리며 마음의 여유를 되찾게 해주는 장엄한 키보드 연주곡 ′She Mourns A Lengthening Shadow′. 명확히 드러나는 기타의 멜로디 라인이나 키보드에 의한 웅장한 중반부가 대단히 인상적인 ′The Rape And Ruin Of Angels (Hosannas In Extremis)′는 곡 제목답게 여성의 엑스터시의 신음과 공포의 비명이 교차하며 최후까지 자극적인 여운을 남기며 막을 내린다.
크레이들 오브 필스라는 밴드는 영국의 자존심을 넘어 블랙 메탈의 자존심이 되어가고 있다. 블랙 메탈이라는 장르가 아무 생각 없이 내달리고 악만 바락바락 지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발매 후 5년이 지난 지각 발매이긴 하지만 충분히 기다린 가치가 있는 앨범이 될 것이다. (서울음반)